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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선재(享草齋) 중건기(重建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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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84회 작성일 23-10-11 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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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향선재(享草齋중건기(重建記

 

우리 임씨(林氏)는 신라(新羅)와 고려(高麗)를 거쳐 이조(李朝)에 이르기까지 대()를 이어 현달(顯達)하여 여러분의 공경(公卿)이 나와 진실(眞實)로 동방(東方)의 뛰어난 성씨(姓氏)가 되었다.

금성(錦城)에서 살기 시작한지도 또한 오래되었다.

직장공(直長公以下로 금호공(錦湖公)에 이르기까지 여러 대수(代數)의 묘소(墓所)읍치(邑治)의 남쪽 흥룡등(興龍洞남방(南方기슭에 있어서 그 때문에 계속(繼續)하여 장사(葬事지내는 산소(山所)가 되었다.

풍수가(風水家)들이 모두 길지(吉地)라고 칭()하고 예전에 재실(齋室)이 있었으니 곧 선세(先世)인 복룡 처사공(伏龍處士公)이 창건(創建)한 바였다.

향선(享先)이라는 두 글자를 취()해다가 재실(齋室)의 이름으로 삼았었다.

생각건대 그 보본(報本)의 정성(精誠_과 돈종(敦宗)의 의()가 성대(盛大)하고 상세(詳細)하게 옛날의 서문(序文속에 실려 있었다.

세월(歲月)이 여러 차례 변()하여 재목(材木)과 기와가 썩어짐을 면()치 못하여 장차(將次전복(顚覆)될까 두려워서 지난 무진년(戊辰年)에 족숙(族叔금우공(錦愚公)과 여러 종친(宗親)들이 협의(協議)하여 고쳐 지을 것을 도모(圖謀)하였다.

간수(間數)와 기초(基礎)는 모두 옛날의 모습대로 하고 들보나 기둥 및 서까래는 모두 새롭게 고쳤다.

경비(經費)가 너무 많아 여러 계절(季節)이 바뀌어 공역(工役)이 비로소 끝났다.

불초(不肖)는 외람(猥濫)되이 이 역사(役事)에 참가(參加)하였는데 실제(實際)로 여러 종친(宗親)들의 정성(精誠)을 다한 힘에 의존(依存)하였으니 노력(勞方)을 했다고 말이나 하겠는가?

재실(齋室)이 건중(建重)되자 옛날의 액자(額子)를 그대로 걸었다.

상로(霜露)의 계절(季節)을 달할 때마다 족친(族親)들이 이곳에 모여 이곳에 잠을 자며 공신전헌(恭伸奠獻)의 예()와 애목(愛睦)의 정()을 돈독(敦篤)하게 펴기에 마땅하여 섭섭한 바 없다.

그러나 또 한마디 말을 하여 힘쓰도록 하노라.

대체(大體)로 사람의 자식(子息)으로 어버이를 섬김에 하루에 삼생(三牲)을 사용(使用)하고 주식(酒食)을 찬()으로 바치면 잘 봉양(奉養)한다고 말할 수 있으나 오직 뜻을 잇고 사행(事行)을 계술(繼述)한 뒤에야 이를 지효(至孝)라고 여기는 것이다선조(先祖)를 받드는 것도 또한 그러하니 향()을 피우며 제사(祭祀지내는 일도 무척 어려운 일이나 선조(先祖)를 생각하여 덕()을 닦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가만히 생각건대 우리 선조(先祖)들의 충의(忠義)와 명절(名節덕업(德業)과 문장(文章)은 대대(代代)로 서로 이어져 그렇게 활짝 빛났었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기우러졌는가?

오직 원(하노니 우리 종친(宗親)들은 재실(齋室)의 모앙을 새롭게 고친 것을 능사(能事)로 다 마쳤다고 하지 말고 선조(先祖)의 의덕(懿德)을 몸으로 생각하고 충효(忠孝)를 과책(課責)하며 기초(基礎)를 공고(鞏固)히 하여 학문(學文)을 심고 쌓아 재실(齋室)의 모양을 사이에 가득 채워 영세(永世)토록 끊이지 않게 한다면 이 재실(齋室)의 불후(不朽)함은 저절로 그 가운데 있으리라.

옛날에 “보통 사람의 자손(子孫)은 되기 쉬워도 어진 자손(子務되기는 어렵다고 했는데 이 말은 작은 선()이야 선조(先祖)를 들치기에 부족(不足)하지만 작은 악()이야 선조(先祖)를 누()되게 하기에 충분(充分)하다는 말이다.

모든 우리 여러 종친(宗親)들은 힘쓰고 힘쓰시오.”라고 말하자 모두가 그렇게 합시다라고 하여 이런 것을 기록(記錄)하여 기()로 삼는다.

不肖 後孫 魯秀 謹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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