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선재(享先齋) 상량문(上梁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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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25회 작성일 23-10-11 02:48본문
2) 향선재(享先齋) 상량문(上梁文)
엎드려 생각건대 예(禮)가 오래도록 소홀(疏忽)하지 않게 하는 데는 선조(先祖)를 받들고 효도(孝道)를 생각하게 함이 가장 마땅하네.
어떤 일이 큰일인가?
오로지 후손(後孫)에게 넉넉하게 하고 계책(計策)을 남겨 주는데 근본(根本)을 버리지 않아야 이에 그 덕(德)을 닦을수 있네.
공경(恭敬)하며 생각건대 이 향선재(享先齋)는 상세(上世)로부터 수십대(數十代)를 지나오며 쳐다보고 비로 쓸던 선영(先塋)이며 五百年 가까이 수호(守護)하고 금(禁)하여 지키던 곳일세.
평소(平素)에 지팡이 짚고 다니던 곳인데 이에 옷과 신을 묻은 무덤으로 만들었네.
충정공(忠貞公),충간공(忠簡公)의 공훈(功勳이) 고려(高麗)때에 높아 넉넉한 은택(恩澤)이 끊이지 않았고 평릉(平陵),평성부원군(平城府院君)으로 위작(位爵)을 봉(封)해 주었으니 아름다운 음보(蔭補)가 미친 바라네.
죽봉(竹峯)이 높이 치솟은 곳,소가 울던 길지(吉地)를 차지하여 송현(松峴) 근방(近傍)에 오히려 임금의 명(命)으로 정려(旌閭)를 두었구나.
명공거경(名公巨卿)에 대(對)해 빗돌을 세워 현덕(賢德)을 추모(追慕)할 제, 대인(大人),군자(君子)들이 비명(碑銘)에 사행(事行)을 기록(記錄)했네.
용흥(龍興) 옛 고을에 서기(瑞氣)가 항상(恒常) 서려있고 새가 날개를 편 듯한 제각(祭閣)의 공역(工役)에 신속(迅速)히 이루어졌네.
우리 선영(先塋)의 언덕에 삼나무 소나무가 울창(鬱蒼)하고 시내에서 뜯은 제물(祭物)이 정결(精潔)하네.
후손(後孫)이 참으로 번성(繁盛)하여 일을 모으고 짐을 모았으니 연월(年月)이 그야말로 길(吉)하다고 달력이 알려주네.
재목(材木)이 부패(腐敗)해서 지붕을 이지 못했더니 청당(廳堂)이 넓어서 증제(增制)해도 무방(無妨)하구나.
위에 기둥을 세우고 아래로 집을 지어 풍우(風雨)를 가릴 만하고 동(東)쪽에 집을 짓고 서(西)쪽에 집 지어 염량(炎凉)이 때에 따라 마땅하네.
이에 천보구여(天保九如)의 말을 가지고 상량(上樑) 육위(六偉)의 송(頌)을 돕는다. 아랑위(兒郞徫)여 들보를 동(東)쪽으로 드니 서석봉(瑞石峯) 머리에 아침 해가 붉어라.
광명(光明)을 빌어다 집 틈에 걸었으니 문장(文章)과 절의(節義)로 가풍(家風)이 있구나.
아랑위(兒郞偉)여 들보를 서(西)쪽으로 드니 회진(會津)과 제포(齊浦)에 푸른 연기가 드리웠네.
한가락 철마(鐵馬) 소리 정차장(停車場)에서 들리니 먼 지방(地方)에서 찾아와도 길을 헤매지 아니하리.
아랑위(兒郞偉)여 들보를 남(南)쪽으로 드니 영산호(榮山湖)의 물빛이 쪽빛처럼 푸르구나.
진원(眞源)이 혼혼(混混)하여 구덩이에 가득찬 후에 흘려가니 돈목(敦睦)하는 우리 종족(宗族) 즐겁고도 즐거워라.
아랑위(兒郞偉)여 들보를 북(北)쪽으로 드니 높고 험(險)한 금성산(錦城山)이 남토(南土)를 진압(鎭壓)하네.
이 땅에 영기(靈氣)를 내려 현인(賢人)을 태어나게 하니 대대(代代)로 우리 가문(家門)에 호덕(好德)이 있었네.
아랑위(兒郞偉)여 들보를 위로 드니 선령(先靈)이 눈앞에 계신 듯 항상(恒常) 우러러 보네.
달려 다니며 일을 받드는 여러 자손(子孫)들은 춘추(春秋)로 상로(霜露) 내릴 적에 더더욱 서글퍼라.
아랑위(兒郞偉)여 들보를 아래로 드니 휘넓은 동남(東南)쪽에 큰 들이 열렸구나. 나락 추수(秋收) 가득히 거두어 술을 빚어 향기(香氣)롭게 효사(孝祀)하니 순수(純粹)한 복(福)을 내리리라.
엎드려 원(願)하옵건데 상량(上樑)한 후(後)에 만년(萬年)을 지나오며 자손(子孫)의 수(數)가 억(億)뿐만이 아니니 지초(芝草)와 예천(醴泉)이 근본(根本)이 있듯이 아비는 사랑하고 자식은 효도(孝道)함이 이어가고 뽕밭비 바다가 되도록 비록 변(變)해도 장목(壯木)한 건물일랑 헐어지지 마소서.
충정공(忠情公) 十七代孫 相熙 謹撰